1. 송나라의 대표 스포츠 ‘추완(蹴鞠)’의 기원
중국 고대 스포츠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추완(蹴鞠)’은 송나라 시대에 들어 절정의 인기를 누린 공놀이형 경기였다. 추완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공(鞠)을 찬다(蹴)’는 의미로, 오늘날 축구 또는 배구와 유사한 구조를 띤 놀이였다. 그 기원은 기원전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본래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병사들의 민첩성과 협동심, 순발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특히 송나라(960~1279년) 시기에 이르러 추완은 단순한 훈련 도구를 넘어 대중적인 스포츠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당시 수도 개봉(開封)에서는 귀족은 물론 서민층 사이에서도 추완이 널리 퍼졌으며, 전문적으로 추완을 구사하는 직업 선수 ‘추완사(蹴鞠師)’도 등장했다. 그들은 황실과 귀족의 연회에서 시범 경기를 펼치며 명성을 얻었고, 일종의 스포츠 스타로 대접받기도 했다.
이 시기의 추완은 경기 형식, 사용되는 공의 종류, 규칙 등에서 다양화되며 ‘공중형’ 추완과 ‘지상형’ 추완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넘기는 공중형 추완’, 즉 현대 배구와 유사한 형태로 진화한 모습이다. 이처럼 송나라의 추완은 단순한 발놀림 게임이 아니라, 다양한 변형과 문화적 요소를 포함한 종합 스포츠로 발전했던 것이다.
2. 공중형 추완의 규칙과 경기 방식
송나라 시대의 ‘공중형 추완’은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팀원끼리 연속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오늘날의 배구처럼 그물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형 또는 반원형으로 구성된 팀원들이 서로에게 공을 주고받으며 유지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이 경기는 개인기보다는 팀 간의 조화, 빠른 판단력, 순발력을 요구하는 점에서 현대 배구와 상당히 유사하다.
경기에서 사용된 공은 동물의 털이나 천을 단단하게 말아 만든 ‘추(鞠)’이었고, 그 크기는 성인 손바닥만 했다. 공의 내부에 바람을 불어 넣는 구조는 아니었지만, 겉에 가죽을 덧댐으로써 튕김력과 공중 안정성을 높였다. 추완사는 주로 발, 무릎, 어깨, 가슴을 사용해 공을 다뤘으며, 손을 사용하는 것은 규칙 위반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현대 축구 규칙과 유사하지만, 공중 유지라는 면에서는 배구의 원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공중형 추완에서는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공의 방향성과 팀원 간 거리, 패스 속도 조절 등의 정교한 팀워크가 필수 요소였다. 어떤 경기는 최장 공중 유지 시간을 겨루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상대 팀과의 대결 구도로 누가 먼저 공을 떨어뜨리느냐를 겨루는 경기도 있었다. 경기 도중에는 음악이나 응원, 심지어 무용과 결합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져, 추완은 스포츠이자 공연예술로 자리매김했다.
3. 송나라 사회 속 추완의 위상
송나라는 유교 질서 속에서도 도시 문화와 여가 문화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상업이 번성하면서 도시민들의 문화생활이 활발해졌고, 추완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귀족부터 평민까지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통의 여가 문화로 발전했다. 특히 개봉, 항주 같은 대도시에서는 ‘추완 경기장’이 존재했으며, 이곳에서는 일반 시민도 관람하거나 참여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추완사’라는 전문직업군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추완을 전문적으로 배우며, 팀 단위로 소속되어 황실이나 지방 관청의 후원을 받았다. 특히 추완사는 궁중 오락이나 외교 행사의 엔터테이너로도 활약했는데, 외국 사신이 방문할 경우 이들의 경기 퍼포먼스는 중국 문화의 위엄을 알리는 일종의 국가적 이벤트였다.
추완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 추완사도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당대 스포츠 문화가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많은 화가와 문인들도 추완을 주제로 한 그림이나 시를 남겼으며, 이는 송대 미술과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추완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공동체 문화와 예술의 융합점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4. 추완에서 현대 스포츠로 – 유산과 변형
오늘날 추완은 중국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 놀이가 되었지만, 그 문화적·역사적 유산은 현대 스포츠로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송나라 시기 추완의 두 가지 형태 중 ‘공중형 추완’은 현대 배구와 유사성을 가지며, 반대로 지상형 추완은 현대 축구의 원형으로도 인용된다.
실제로 FIFA(국제축구연맹)는 축구의 기원 중 하나로 중국 추완을 공인하며, 한때는 월드컵 기념 행사에서 추완 시범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비록 규칙이나 경기 방식은 다르지만, 공을 다루는 방식, 경기의 목적, 신체 활용 등 여러 면에서 현대 스포츠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공중형 추완’은 순수한 공중 유지와 팀워크 중심 경기라는 점에서 현대 배구와 철학적으로도 연결된다.
최근 중국 정부와 일부 스포츠 단체는 전통 스포츠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통해 추완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거나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유산 보존을 넘어 중국 체육문화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시도로도 평가된다.
결국 추완은 단순한 고대 놀이가 아닌, 현대 스포츠로의 진화를 가능케 한 출발점 중 하나다. 특히 송나라 시대의 ‘공중형 추완’은 배구의 원형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늘날 스포츠의 다양성과 기원을 탐색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단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통해 놀이와 운동이 어떻게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계승되는지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