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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마야 문명의 사라진 스포츠인 공놀이 ‘울라마’

by azjar 2025. 4. 14.

1. 울라마의 탄생 – 마야 문명의 스포츠 문화


남미의 찬란했던 고대 문명 중 하나인 마야 문명은 천문학, 수학, 건축뿐 아니라 독특한 스포츠 문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는 ‘울라마(Ulama)’라는 공놀이가 있다. 울라마는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선 종교적, 정치적 의미가 담긴 의식적 스포츠로, 마야뿐 아니라 아즈텍, 올멕 문명 등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전승되었다. 이 고대 공놀이는 기원전 14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구기 종목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울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고무로 만든 공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만 가능했던 독특한 문명적 특징으로, 고무의 원재료인 고무나무의 수액을 활용한 정제 기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공의 무게는 약 3~4kg 정도로 무척 무거웠고, 선수들은 이 공을 손이나 발이 아닌 엉덩이, 허벅지, 가슴 등 신체 일부를 활용해 튕겨냈다. 이는 단순한 체육 활동이 아니라 기술과 인내, 체력, 그리고 상징성이 결합된 고난도의 운동이었다.

경기는 일반적으로 양 팀이 참여하여 정해진 규칙 아래 진행되었으며, 공을 상대 진영의 벽에 있는 고리나 특정 지점에 통과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울라마는 단순히 점수를 내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많은 기록에 따르면, 이 경기는 전쟁 포로나 죄수들이 참가하는 의식으로 변형되기도 했으며, 패배한 쪽이 희생 제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울라마는 생명을 건 경기이자, 신과의 교감, 권력의 상징, 사회 통제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2. 경기장과 장비 – 울라마의 물리적 환경


울라마가 진행된 경기장은 ‘볼 코트(Ball Court)’라 불렸으며, 마야 유적지 곳곳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멕시코의 치첸이차(Chichen Itza) 유적지에는 길이 96m, 너비 30m에 달하는 대형 볼 코트가 남아 있어, 당시 경기의 규모와 중요성을 짐작케 한다. 코트의 양측 벽면에는 돌로 된 고리(hoop)가 수직으로 매달려 있었고, 선수들은 이 고리를 통해 공을 통과시킴으로써 득점을 노렸다. 이 고리는 보통 높이 6~7m에 위치해 있어, 정확성과 강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상반신을 노출한 채, 허리에 고무 보호구를 착용했다. 이는 공의 충격으로부터 엉덩이와 허벅지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였다. 또한 무릎, 팔꿈치, 가슴 등에 가죽이나 천으로 된 보호 패드를 덧댔으며, 경기용 의상은 지역과 시기,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귀족이나 제사장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더욱 화려한 복식이 사용되었고, 일반 민중 경기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차림새로 진행되었다.

공은 마야인이 고무 수액을 가공해 만든 것으로, 놀랍게도 오늘날의 천연 고무 공과 유사한 탄성과 내구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공의 무게가 상당해 부상을 입기 쉬웠으며, 선수들에게는 높은 강도의 체력이 요구되었다. 울라마는 단순히 공을 주고받는 놀이가 아니라, 선수의 인내심과 회복력을 시험하는 체력 스포츠였던 셈이다.

 

3. 종교와 정치의 도구로 사용된 울라마


울라마는 마야 문명에서 신을 기리는 제사의 일환으로도 기능했다. 경기의 승패는 신의 뜻으로 여겨졌으며, 신의 분노를 달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한 절차로 여겨졌다. 특히 일부 경기에서는 패배한 자 혹은 뛰어난 선수가 희생 제물로 선택되어 신에게 바쳐졌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마야인에게는 신과 영혼의 연결, 재탄생의 순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울라마는 또한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 도시 국가 간의 갈등이 있을 때, 전면전 대신 울라마 경기로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 선택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상대 도시를 굴복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또한 왕이나 귀족이 이 경기를 주관하거나 직접 출전하는 경우, 그 통치자의 권위와 신성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경기는 곧 정치적 연극이자 군중 통제의 도구였던 셈이다.

마야 문명에서 울라마의 위치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 중심축이었다. 사람들은 울라마를 통해 권력 구조를 인식하고, 사회 규범을 내면화했으며, 신과의 관계를 경험했다. 이는 울라마가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의 표현이었음을 보여준다.

 

4. 현대의 울라마 – 전통의 계승과 복원


마야 문명이 멸망하고 스페인의 정복이 시작되면서, 울라마는 점차 종교적, 정치적 금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스페인 식민지 당국은 우상 숭배와 폭력성을 이유로 울라마의 경기장을 파괴하거나 폐쇄했고, 오랫동안 이 고대 스포츠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울라마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문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멕시코의 시날로아(Sinaloa) 지역에서는 울라마를 전통 스포츠로 복원하여 경기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울라마 전문 리그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이들 현대 울라마는 종교적 의식을 배제하고, 순수한 스포츠와 문화 체험의 형태로 진행된다. 경기장은 현대식으로 복원되었고, 규칙 역시 안전성을 고려해 일부 조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무 공을 엉덩이로 튕겨내는 전통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울라마는 이제 단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중남미 문화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후손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마야 문명이 남긴 이 위대한 유산은 오늘날 인류의 고대 스포츠 문화 연구와 교육에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으며, 관광 산업과도 연계되어 주목받고 있다. 울라마는 더 이상 사라진 놀이가 아닌, 다시 태어난 문화 자산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