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구려의 ‘석전(石戰)’ – 돌 던지기 전쟁놀이

by azjar 2025. 4. 17.

1. 석전의 기원과 유래 – 고구려 민족의 집단 놀이


‘석전(石戰)’은 문자 그대로 ‘돌을 던져 전쟁처럼 싸운다’는 뜻의 전통 놀이로, 주로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행해졌던 집단 경기였다. 석전의 기원은 고대 고구려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실제로 전쟁을 대비한 모의 훈련의 성격이 강했다. 고구려는 산악 지형에 적응한 강인한 민족으로, 전사 정신과 집단 단결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이러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석전은 겨울철 농한기에 주로 벌어졌으며, 마을과 마을, 또는 집단 간 대항전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단순한 힘겨루기나 신체 단련 차원의 놀이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전략적 요소가 결합되어 일종의 **‘전투 시뮬레이션’**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전사로 성장해야 했던 고구려 청년들은 실전과 같은 석전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력을 배양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군대의 모의훈련이나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슷한 기능을 했으며, 사회 전반의 전투력 유지와 병력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순한 오락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고구려 특유의 군사문화와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민속놀이였다.

 

2. 석전의 진행 방식과 규칙


석전은 단순한 돌 던지기가 아닌, 엄격한 규칙과 구조를 가진 집단 대결이었다. 주로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일정한 장소에서 마주한 뒤, 사전에 준비한 돌멩이를 던져 상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진영을 돌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경기는 일정한 시간 또는 한쪽의 후퇴로 끝났으며, 참가자는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

돌은 주로 주먹 크기의 둥근 돌을 사용했으며, 무분별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금지구역’이나 ‘투척 한계선’ 등의 규칙이 존재했다. 또한 전투 전에는 양측 대표가 협상하여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안전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심판 역할을 맡은 노인들이 중재자 역할을 하며, 과열된 경쟁을 막는 전통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면 한쪽에서 돌을 던지고, 다른 쪽은 방패나 손으로 이를 막거나 피하면서 반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공격과 수비가 반복되며 일종의 집단 전투처럼 전개되었고, 참가자들은 협동심과 기지를 발휘해야 했다. 승패는 주로 상대를 후퇴시키거나 특정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결정되었으며, 실제 전투에서 필요한 전략과 조직력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3. 석전의 사회문화적 역할과 영향


석전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사회 통합과 공동체 의식 형성에 크게 기여한 놀이였다. 고구려 사회에서 석전은 청소년의 성장 통과의례와도 같은 의미를 가졌으며,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고, ‘진짜 전사’로 거듭나는 훈련의 장이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육체적 능력을 시험하는 것을 넘어서, 용기, 인내, 리더십, 전우애를 기르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석전은 계층과 성별, 세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축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남성 중심의 전투 경기였지만, 여성들과 노인들은 응원과 중재를 맡으며 간접적으로 경기에 참여했다. 마을의 화합을 위한 행사로, 경기가 끝난 후에는 음식과 술을 나누며 함께 어울리는 잔치가 열리기도 했다.

석전은 단지 놀이가 아니라 고대 고구려의 집단 문화와 군사 문화가 녹아든 민속 전통이었다. 이를 통해 사회는 전사 집단의 육성을 효율적으로 수행했고, 청년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군사 조직의 일원이 되는 시스템을 체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석전은 공동체 유지와 국가 방위라는 이중적 목적을 동시에 만족시킨 독특한 문화현상이었다.

 

4. 석전의 금지와 소멸, 그리고 현대적 재조명


석전은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왔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며 점차 금지되기 시작했다. 특히 세종, 성종, 영조 등의 군주들은 석전의 폭력성과 부상 위험, 민심 동요 우려를 이유로 공식적으로 석전을 금지하는 교지(敎旨)를 발표했다. 실제로 석전으로 인해 사망자나 부상자가 발생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대규모 시가전처럼 번질 경우 치안 유지에 큰 부담을 줬다.

조선 후기에는 석전이 명절이나 지방 축제의 일환으로 제한적 진행되었고, 점차 그 형태가 덜 공격적이고 유희적인 민속놀이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석전은 사라진 전통 놀이로 분류되며 대중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민속놀이 복원과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석전의 역사적 의미와 공동체적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방 축제에서는 안전한 방식으로 재현된 석전 시연 행사가 열리며, 전통놀이 체험 프로그램 속에서 석전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는 석전을 단순히 폭력적인 놀이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고구려인의 집단성, 용맹성,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한 역사적 자산으로 이해하려는 현대의 시도라 할 수 있다.